소공자에서 붓다필드의 게이트까


예전에 라즈니쉬나 지두 크리쉬나무르티가 서점가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가 있었다.

인도 가는 게 지금처럼 쉬운 시절도 아니고

책을 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는 왜 그들처럼 위대하고 현대적이며 삐까번쩍한 스승이 없는 걸까?

하는 갈증을 느꼈다.

개중에는

나도 깨달음을 얻거나 쿤달리니가 쾅 터져서 그들처럼 모든 것(?)을 해결하고 폼나게 진리를 썰해야지 하는 심지 깊은(?) 사나이들도 있었다,


이때 그 어렵다는 <전등록>강의를 불교식 용어가 아니라 한글세대의 어법으로 알기 쉽게 술술 쏟아내며 구도자들을 유혹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소공자이다.

오 쇼의 책들처럼 그가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입으로 썰한 강의는 이름도 두근거리게 <더 나아갈 수 없는 길>라는 제목으로 1,2.3권으로 출간되었고 명상 서적 코너를 들르는 사람은 어떻게든 한 번은 들쳐보게 되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청담동의 한 아파트 상가 건물에 소공자 센터가 생기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길에서 헤매고 있던 많은 구도자들이 그 문을 두드리게 된다.


소공자의 본명은 한기석이다. 한 도사로 불린 적도 있었다.

10.26 직전에 티브에 나온 심수봉을 보다가 한 도사는 그녀의 오라를 읽고는

그녀에게 닥칠 모종의 큰 사건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때 그 사람>으로 상종가를 치던 심수봉은 과연 박 통의 죽음을 낭자한 선혈과 함께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뒤 한 기석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들은 곧 내연의 관계가 되고 자식까지 두지만 결국엔 파경을 맞는다.

이때부터 당시 수퍼스타였던 심수봉과의 관계로 인해 한 기석은 여러 여성지나 대중 저널들의 집중 타겟이 된다.

한 기석은 어려서부터 심령과학이니 초상현상이니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를 취재한 기자 역시 그 분야에 대한 한 기석의 지식에 상당히 인상을 받았을 정도였다.


한 기석은 자신의 말에 의하면 “어느날 전구불이 갑자기 퍽! 하고 나가면서 뒤통수도 퍽! 열렸다”고 한다. 쿤달리니가 터지고 오도한 것이다.

그 뒤 소공자로 이름을 바꾼 뒤 센터를 개설하고 제자들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구루가 된 그의 스타일이 좀 재미있었다.

여러모로 오쇼의 짝퉁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피털 카바가 씌워진 의자에 앉아 양손을 깍지끼우며 마이크를 앞에 두고 강의하는 모습이 그래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길게 늘어지는 장삼자락 의상에 항상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도 그러하였다.

오쇼는 대머리인데다 방사능 중독 등 건강상의 이유로 할 수없이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소공자는 치렁치렁한 장발인데다 특별한 병력도 없었던 듯 하므로(가장 최근에 만나본 한 기석의 모습은 그 나이의 여느 사람과 달라보이지 않았었다.)

어쩐지 한편의 코메디같았다.

특히 인도 푸나에 들락거리며 오쇼의 세례를 듬뿍 받고 온 산야신들에게는 더욱.


한국의 성자 소공자의 이 짝퉁 패션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어 보인다.

당시 소공자의 수석 제자 내지 일급 참모들은 학술위원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나다 기획>출판사 출신의 신종현과 한상영이었다.

신종현은 홍신자 석지현의 <마하무드라->가 나오기 전에 한국에서 최초로 라즈니쉬 책을 번역한 사람이고, <나다 기획>은 한국에 처음 라즈니쉬 붐을 가져오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라즈니쉬 붐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던 류시화나 길 연 등은 지금이야 각자 길을 가고 있지만 신종현 등과는 서로 아는 사이들이었다. 그들은 오쇼의 원서나 비디오 등 여러 자료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집단에 들어있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로부터 꽤 오랜 세월, 한 이십 여년이 지났다.

어느날

신종현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추종자를 늘려가고 있는 <붓다필드>의 수장인 게이트라는

신비의 인물로 한국의 도판(?)을 평정하며 위풍당당하게 등장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소공자 센터의 좌청룡 우백호였던 한 상영은 살인교사혐의로 구속된 영생교의 교주의 학술위원이 되어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된다.

한 사람은 저 높은 대리석 연단 위에서, 한 사람은 철제의자가 놓여진 경찰서 취조실에서

....

참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소공자 센터를 거쳐 스승이 된 이들 중에는 게이트 신종현 이외에도

지금은 상당히 저명해진 한00선생, 묵0 선생 등등이 있으니 당시의 소공자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


소공자의 책을 접한 나도 청담동 센터를 일 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공자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어느날 류 시화씨를 만나서 그곳에 간 느낌을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근데, 처음 갔을 때 있던 여자들이 아직도 있던데 예전하고는 눈빛이나 얼굴이 많이 틀려보였습니다. 수척하고 근심 있어 보이고, 꼭 뭔가 일을 당한 처녀애들처럼.

내 생각엔 조만간 소공자가 사법 처리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그들 일파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류시화씨가

 “그래요?  그래도 함부로 단정짓고 떠들고 다니지 말아요.”

했던 것 같다.

 평소 류시화씨는 기세등등한 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는데 아마 어떤 집단의 광신도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서 그런 충고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예측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소공자 센터의 핵심멤버였던 신종현의 선배였던 길 연 선생이 내게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다.

 “그건 맞아. 사법 처리가 된 건 아니지만 그럴 뻔 했거든.”

 “어? 어떻게 알아요?”

 “응. 신종현이가 나한테 그랬었거든.”

소공자가 여자들을 건드려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소공자 센터도 한 순간에

폭삭 망했다는 것이다.

 하하하.

  아무튼 소공자는 그 뒤 아임에프 전후로 <인사이드 월드>라는 월간지를 창간한다.

뭐 직관 경영이랄까 마인드 경영이랄까를 설교하는 일종의 경영 컨설팅 잡지였다.

아임 에프 한파가 닥쳐올 때였다.

어느날 국회 도서관엘 갔다가 그 책을 훝어보니 오쇼 흉내를 내는 것은 여전해 보였다.

이런 식이다.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여기저기 전 세계를 떠돌던 오쇼 일행이 그리이스에 도착하자

그리이스 정교회 댓방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저 사악한 오쇼를 쫓아내야 한다고 연일 성토한다. 오쇼 한 사람 때문에 그리이스의 청소년 전체와 도덕과 정신이 몽땅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쇼가 묵는 거처 주변에서 대규모 추방 데모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오쇼는 “그래, 그럼 나는 당신의 데모를 구경하겠다.” 고 약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리이스 문명은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문명 중의 하나였다. 그리이스 정교회는 이 천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그리이스 정신을 지배했다. 그런데 나 한 사람이 이곳에 며칠 묵는다고 망할지도 모른다면 그리이스 정교회는 차라리 망하는 게 좋다.”

 소공자는 그것을 이렇게 써 먹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지금의 단 기간의 위기로 망해 버릴 것 같다면 차라리 망해 버리는 게 낫다.”

ㅎㅎㅎ


소공자 내지 한기석씨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신종현 씨 얘기를 해보기로 하자.

맨 처음 붓다 필드니 게이트니 하는 단어를 듣고

나는 이 사람이 오쇼 계열의 산야신인 줄 알았다.

이름 상에서 오쇼 냄새가 너무 풍겼기 때문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나 할까

뭐랄까

그럴 만한 이유도 있겠다 싶었다.




게이트가 유명해진 것은  월간 <신동아>라는 거대언론 매체에 장문 인터뷰가 실리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그를 기자와 함께 찾아가 며칠에 걸쳐 인터뷰를 한 뒤 글을 쓴 사람은 김 모 교수다.

김 교수는 육사를 졸업한 전역 대령 출신에다 이학박사이며 한국 최초의 기박사, 단전 호흡 강사이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력은 그가 쓴 기사의 신빙성을 매우 높여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묘사한 게이트는 꿈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일세의 대도인이었다.

요가난다 자서전에 나오는 전설적인 초인 <바바지>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게 이트는 우주의 18차원까지도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리며, 임종을 한 뒤 저승 길에서 레테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이모를 위해 자신이 직접 중음길로 가서 이모를 잘 인도해 주고 왔다거나, 어떤 식으로도 가망이 없던 말기 암 환자를  신통력을 발휘해 완치시킨다거나, 자신의 모습을 두 개로 쪼개 동시간대에  다른 두 장소에 나타난다거나...

등등.


게이트는 몇 해 전 원주 피라미드 명상원에서 수 백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한국 모임을 열었다.

원장이 상당히 놀랐는지 내게 전화를 하며 한 번 와서 현장을 경험해 보라고 하였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왔다길래 뉴질랜드 출신의 오쇼계열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한국인이라고 하였다.

원장 말이 예전에 캠프를 했던 <신과 나눈 이야기>사람들도 많이 왔노라고 하였다.


나중에 나는 게이트의 사이트인 <붓다필드>에 들어가 보았다.

게이트의 글도 읽어 보고 김 교수의 신동아 인터뷰 기사도 보았다.

결론은?

어이가 없다,

였다.


첫째,

게이트의 글 수준이다.

그 사람의 안목, 메시지, 독특성,

글 속에 들어 있는 명상적 깊이, 표현력, 논리전개, 지적 수준 등등.

전부다 한심 평범했다.

나중에 출판사의 베테랑 편집자들에게도 소스를 주었더니

그들의 반응도 한결 같았다.

 “허접하다. 출판감이 안 된다.”였다.


두 번째.

붓다필드 홈피에는 어이없는 코너가 하나 눈에 띄었는데

<깨달은 자들의 코너> -그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게이트의 제자들 중에서도 깨달음을 인가받은 이들만이 올리는

전용 게시판 같았다.

하하하하.

점입가경도 아니고 무슨 정신병동 같았다.


한때 게이트의 스승이었던 소공자 역시도 깨달음 장사를 하였다.

소공자도 오쇼처럼 자신에게 귀의(?)한 제자들에게 법명을 주었는데

돌림자에 따라 품계가 결정되었다.

예컨대 무슨 자가 들어간 법명 제자는 깨달음 직전에 온 제자,

무슨 자가 들어간 제자는 돈오를 하였으나 삼매는 들어오지 못한 제자,

무슨 자는 좀더 공부를 해야 하는 제자.

그런 식인데 소공자는 한번은 이렇게 얘기한다.

“현명아”

“예.”

“현자는 내가 돈오한 제자한테 주는 법계명인데 저 현명은 자기도 지금 돈오를 했는지 안했는지 아리까리 할 것이다. 하지만 돈오를 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뭐 이런 식이었다.

ㅋㅋㅋㅋ

정말 어이가 없다.


예전에 가촌 선생이란 노인네도 있었다.

도반정담인가 하는 곳에 들어갔더니

그곳 또한 정신질환자 동호회 같았다.

뭐, 어떤 미친 놈이 글을 올렸는데

“앞으로 삼 년내에 깨달을 사람,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앞으로 일년 내에 깨달을 사람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그 런 꼬라지의 제자란 놈이나 그런 제자들을 모아놓고 여든에 이 앓는 소리마냥 자기 자신도 무슨 소릴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주저리주저리 사이비 정신분석 및 대입 본고사 수준 정도의 문장론을 강의하고 있는 전직 국어선생 출신의 스승이란 자나 다 가련해 보이기만 했었다.


아무튼 똥파리한테는 X이 밥이고 최고고 왕이다.


그럼 게이트의 신통력 부분은 어떻게 되는 걸까?

길연이 게이트 신종현의 선배이자 형님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얘기하였다.

길연의 책 <푸하하 붓다>에서도 신종현을 빗댄 이야기를 썻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누가 이 우주, 저 우주를 왔다갔다하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떠들길래

길연이 어느날 자기 집에 놀러온 그에게 볼펜 한 자루를 보여 주며 말했다.

 “좋아. 네가 유체이탈인지 뭔지 자유 자재로 한다고 치자. 근데

 오늘 밤 볼펜 한 자루를 책상 위에 놓고 잘테니 내일 내가 어떤 색깔 볼펜을 놓고 잤는지 그것만 알려줘. 그걸 알아 맞추면 내가 네 말을 인정해 줄게.“

그렇게 말했더니

그 후배란 놈은 찍소리도 못하고 뻘쭘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 후배 곧 신종현은 뒷날 길연에게 몇 가지 도움을 요청한다.

자기가 명상 책을 내려하는데 형이 좀 도와달라는 것을 비롯,

동국대에서 모임을 여는데 형이 명상 시간 진행을 해달라.

또 오쇼 비디오도 있으면 빌려 달라 등등..

예전에 신종현이 배고픈 시절 <선데이 서울>에 천녀유혼류의 미스터리물 연재건도 다리 놓아주고 하던 사이였는지라 길연은 그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신종현은 한국의 도판을 평정한 일세의 대도인으로 둔갑한 뒤

수백 명의 추종자를 한국에 거느리게 된다.

더불어 비엠떠불유, 벤쯔, 볼보... 등등(이름은 정확하진 않다) 비싼 외제차를 세 대나 굴린다고 길연에게 자랑삼아 얘기한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직접 들은 얘기이다.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게이트 붐의 일등 공신인 김교수도 직접 만나기도 하였다.

약속 장소는 게이트의 아지트였던 동국대 근처의 식당이었다.

김 교수이외에

게이트의 열렬한 추종자들 몇 사람이 함께 있었다.

김 교수는 됨됨이가 무척 남자답고 화통하며 좋아보였다.

초면에다 나이도 어린 내게 “내공이 상당한 것 같다며” 정중히 대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김교수가 게이트 신화의 산파이자 모임의 핵심 지주, 실세임을 모르고 있었다.

대뜸,

“게이트 본명이 신종현 아네요?”

하고 반말을 했다가 그들의 숭배적인 분위기를 깨닫고는 살짝 공격적인 어조를 무마시켰던 것이 생각난다.

“근데 왜 인터뷰 기사에는 익명으로 하셨나요?“

하고 물었더니 김 교수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미국 CIA에서 도인들을 몰래 잡아다가 생체 실험도 하고 멋대로 해부도 해보고 하면서

다 잡아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씨아이에 등등 비밀 정보조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명을 피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아마 신종현이 지어낸 전설같은 과거- 처절한 구도행각을 하다가 우연히 기연을 얻어 일세의 도인을 만난 뒤 그의 진전을 얻어 받아 자신도 신선(?)의 위를 받았다는 식의-

를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그의 실제적인 과거 행적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하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간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첫째, 자신들의 게이트야말로 이 시대 인류를 통털어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일세의 대도인으로서 한국의 도판을 단숨에 평정했다는 인식.

또 그런 대도인의 제자라는 엄청난 자부심.


둘째,

내가 한국 도판을 평정했다면 어떻게 평정한 거냐고 물었더니, 김교수왈

봉우 권태훈 옹도 자기 자식벌이 되는 게이트한테 된서리를 맞고는 한 수 굽혔다.

또 게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나라 도판의 최고 도인은 류시화나 길연 아니냐?

(이 말에 속으로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그 사람들 밑에서 배우던 사람이 게이트와 며칠 지내고는 보따리 싸고 게이트님 밑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하는 말이

“나는 길연 선생이나 류시화씨 밑에 있었는데 게이트님이 그들보다도 몇 수 위입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했다는 것이다.

어이없음의 절정이었다.

나는 몇 차례고 길연 선생이나 류시화씨와는 예전부터 교분이 있으며 지금도 만나는 사이이지만

그들은 도인 행세도 하지 않고 도판이니 뭐니 이런 말 들으면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하고 말해 보았지만 그들은 내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예전에 동국대에서 명상 모임을 할 적에 길연은 위대한 게이트의 예우를 받으며 동등한 상석에 앉아 게이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신비의 티베탄 펄싱 요가나 인도 명상을 지도하곤 했을터이니

그들 눈에는 길연 선생이 엄청난 고수로 보였을 것임은 지당할 터였다.

아무튼 뭔가에 홀리게 되면 누구라도 그런 법이다.

 


셋째,

식 사를 하면서 그들은 자기들 스승의 이런 저런 이적을 서로 서로 꺼내 놓고는 그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하지만 가만 들어보니 누구 하나 그 이적을 직접 자신이 겪었다거나 보았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가 그러더라, 누구는 이랬다더라....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게이트에 대한 믿음은 정말 철석같았다.

게이트의 온갖 신기한 이적을 얘기하면서 서로서로 뿅가는 얼굴 표정들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


넷째. 

숙식를 하며 열리는 게이트의 대형 모임에서는 명상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타임 정도 게이트가 주최를 하는데 명상 기법이란 것도 그다지 복잡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명상법이었다. (쿠쉼나인지 쿠쿰나인지라고 하고 한국 전통 공법에도 있는 일종의 지식 내관 명상법으로 기억됨)

대부분은 설교인데  표면적으로는 오쇼의 메시지와 비슷한 게 많았다. 행복하게 신나게 살자..

이런 거였다.

아 무튼 명상을 실제로 하기에는 게으르고 열의도 없으며 해봐도 소득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영적인 생활도 하고 현실의 쾌락도 누리면서, 비슷한 사람들과 대량으로 모여 군집동물로서의 만족도 느끼면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에는 꽤 적당한 가르침이자 모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붓다필드 게이트란 이 정도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다.


아무튼 주변에서 명상을 해왔다고 하는 이런 저런 사람들이 하나둘 붓다필드를 기웃거리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해 보인다.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는 이가 올바로 길을 가려면

견지와 수증과 행원이 두루 갖추어져 한다는 노사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